질병은 하늘이 고치고,
의사는 그 과정을 도울 뿐이다
향설(鄕雪) 서석조 박사 (1921. 4. 2 ~ 1999. 12. 19)
순천향의 설립자 향설 서석조 박사님은 인술로
인간을 이롭게 하고 널리 구제한다는 광제인술(廣濟仁術)을 평생 철학으로 삼으셨으며,
이러한 신념과 철학으로 1974년 순천향종합병원을 개원하고,
순천향의과대학과 순천향 구미, 천안, 부천병원을 열었습니다.
박사님은 또한 대학교육의 실용성과 함께
교육의 본질적 측면에 주목한 교육자이자,
개인적 영달이라는 작은 꿈을 버리고 체계적 인재양성을 통한
사회적 기여라는 큰 꿈을 선택한 실천적 지식인이었습니다.
신경내과 분야의 최고 권위자이자 ‘뇌졸중’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의학자,
환자들이 신음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이 병을 앓는 것처럼
아파했던 가슴 따뜻한 의사였던 향설 서석조 박사님.
하늘의 순리에 따라 인간을 치료하고
고향의 눈처럼 세상을 바라보고자 한대한민국 의학계의 거장,
향설 서석조 박사님의 아름다운 여정 속으로 초대합니다.
걸어온 길
향설(鄕雪) 서석조 박사 (1921. 4. 2 ~ 1999. 12. 19)
- · 1921년 4월 2일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화전리 출생 - · 1939년 3월
대구경북고등학교(구제5년) 졸업 - · 1946년 9월
일본 경도부립 의과대학 의학부 졸업 - · 1946년 9월 1949년 5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조교 - · 1949년 7월 1950년 6월
미국 뉴저지주 세인트 발나바스병원 인턴 - · 1950년 7월
미국 뉴욕주 록크포트 다이어리사나포리움
흉부내과 레지던트 - · 1952년 3월
미국 뉴저지시티 메디칼센터 내과 레지던트 - · 1953년 7월
뉴욕벨뷰병원(코넬대학부) 신경내과 레지던트 - · 1954년 7월
미국 코넬대학 의과대학 강사 - · 1955년 1월 3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 조교수 - · 1955년 4월 1960년 3월
동 대학 내과 교수 및 세브란스병원 내과 과장 - · 1960년 4월 1964년 8월
가톨릭의과대학 내과 주임교수 및 성모병원 내과과장 - · 1964년 11월 1968년 6월
서울특별시 중구 저동 동은병원 개설 - · 1968년 11월 1972년 2월
고려병원 내과부장 및 동 병원 부원장 - · 1972년 3월
백병원 내과부장 - · 1974년 1월
의료법인 순천의료재단 초대 이사장 - · 1974년 5월
순천향병원 이사장 겸 내과부장 - · 1978년 3월
순천향의과대학 초대학장 - · 1980년 11월
학교법인 동은학원 제2대 이사장 - · 1999년 12월 19일 영면
국내 최초
신경내과 분야 전문가,
뇌졸증 의학용어의 창시자
향설 서석조 박사님은 1921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일본의 경도부립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학(1949)에서 국내 최초로
신경내과학을 전공, 뇌척수신경계통의 질환을
연구한 한국 의학계의 선구자입니다.
미국 유학 후 조국은 참담한 6.25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들었고, 박사님은 지식인으로서 깊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당장 귀국해 도와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과 동란의
상처로 신음하는 동포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라도
이미 시작한 의학 공부를 마쳐야 한다는
고민 끝에 후자를 선택했지만, 만일 성급하게
귀국했다면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신경내과 분야의
의학연구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박사님은 약관 32세에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 주임교수를 역임했고,
이어서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내과 교수,
주임교수를 역임하면서 가톨릭의과대학 내과학교실의
기초를 마련하는데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또한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1호 의학박사 이기도 합니다.
박사님은 우리나라 신경내과 분야의 개척자로
1962년 가을에 열린 내과학회에서는 뇌졸중에 대한
보고를 통해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지금도 널리 쓰이고 있는 ‘뇌졸중’이란 의학용어를
최초로 만들었으며, 1971년 2월 25일에는
대한신경내과학회를 창설하고
초대회장에 취임하게 됩니다.
박사님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인 영친왕을 일본에서
직접 모셔와 영면하실 때까지 주치의로서
극진히 모셨는데 그 당시 일본 정부는 영친왕의 상태가
위중하여 모셔갈 수 없다고 강력히 반대했으나
박사님의 의학적 판단으로 한국으로
모셔올 수 있었습니다.
좋은 병원에 대한
염원을 담은
우리나라 의료 법인 1호
순천향병원 개원
박사님의 소원은 늘 미국의 메이요클리닉과 같은
좋은 병원을 우리나라에 세우는 것이었고,
순천향병원은 그 꿈의 시작이였습니다.
1974년 우리나라 의료법인 1호로 개원한 순천향병원은
인간은 하늘의 이치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신념에서부터 유래되었으며, 박사님은 항상 환자는
의사가 고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고치는 것이고,
의사는 단지 이러한 하늘의 뜻을 돕는 사람일 뿐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1978년에는 학교법인 동은학원을 설립하고
순천향의과대학의 문을 여는 한편,
순천향중앙의료원을 설치했고,
1979년에는 순천향 구미병원을
1982년에 순천향 천안병원을 개원했습니다.
또한 1990년에는 순천향 대학이 종합대학인
순천향대학교로 승격되었고,
2001년도에는 순천향 부천병원을 개원하게 됩니다.
한국 최초의
의과대학 설립자이자
진취적인 의료 행정가
한 사람의 개업의로서 한국 최초로 의과대학을 설립한
박사님은 강한 개척정신과 진취적인 면모를
갖추었으며, 한국의 사립대학교 의료원 제도 정립에도
기여해 의학 교육 뿐 아니라 의료 행정가로서 우리나라
의료계 발전에 큰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의사의 삶이란 나 자신보다 남을 위해 사는 삶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향설 서석조 박사님은 의사이자
의학교육자로 광제인술과 광시육영의 뜻을 몸소
실천하시다가 1999년 12월 19일 79세를 일기로
영면하셨습니다.
“순천향대학의 건학이념은 진리 봉사 실천의 정신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으로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대학’ 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이곳에 순천향 의과대학을
세웠습니다.
대학은 그가 존립하는 지역사회는 물론이요 나아가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여야 합니다.
“나는 기초의학을 통해 그러한 꿈을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후학들이 세계적인
연구업적으로 그 꿈을 이뤄주기 바랍니다.”
우리나라 의학계의 큰 별이셨던 서석조 박사님...
그의 이상향은 순천향이었습니다.
하늘의 순리에 따라 인간을 치료하고 고향의 눈처럼
포근하게 환자의 등대가 되셨던 박사님...
향설 서석조 박사님의 이상향 ‘순천향’은 환자들의
이상향인 생명의 샘이자 후학들의 요람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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